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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edrost88/

    NBA 마니아들의 열렬한 환호를 불어 일으키는 이름인 앤써니 데이비스는 2012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된 후 NBA 스타덤에 오르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에서 시작된 그의 여정은 LA레이커스의 코트 위에서 완성되고 있습니다. 2012년 NBA 드래프트가 앤써니 데이비스 드래프트라고 불렸던 이유와 뉴올리언스에서 뛰던 시절, 그리고 그가 구단에 충격을 주며 트레이드를 요청했던 이유들 마지막으로 레이커스에 입단하면서 펼쳐진 승리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더 브로우"의 부상

    앤써니 데이비스가 2012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특유의 눈썹 모양 때문에 "더 브로우"(한국에서는 눈썹 모양이 갈매기를 닮아 "갈매기"라고 많이 부릅니다.)라는 별명을 가진 데이비스는 한세대에 한 명뿐인 재능으로 그를 돋보이게 하는 다양한 기술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다양한 기술을 보유하며 다재다능함을 뽐낼 수 있었던 것은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만 해도 191cm의 신장으로 팀의 가드포지션을 소화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키가 급격히 성장하여 208cm의 큰 키에 운동능력과 가드의 개인기를 모두 갖췄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고교 농구 최고의 유망주로 성장한 그는 농구 명문 켄터키 대학교로 진학하였고, 1학년때 바로 주선 센터를 차지해 평균 14.2 득점, 10.3 리바운드, 1.3 어시스트, 1.4 스틸, 4,7 블록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1년 동안 기록한 186개의 블록은 NCAA 디비전 1 역사상 최고의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만 활약했지만 켄터키 대학을 NCAA 우승으로 이끌고 최우수 선수상을 차지한 그의 잠재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든 NBA 팀들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공격적인 다재다능함과 결합된 뛰어난 수비력까지 보여주었던 그의 대학 시절은 2012년 NBA 드래프트를 앤서니 데이비스 드래프트로 만들었습니다. 1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는 뉴올리언스가 그를 프랜차이즈 초석이자 밝은 미래의 희망으로 여기고 지명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2. 뉴올리언스에서의 시작과 이별

    앤서니 데이비스는 데뷔 시즌 유력한 신인상 후보라는 평가와 달리 선발 출장 2번째 경기에서 수비 경합 도중 뇌진탕을 당해 2경기 결장, 11월 중순 발목 부상으로 한 달간 결장, 2월 말 브루클린 네츠와 경기에서 리바운드 경합 중 어깨를 다쳐 2경기 결장, 4월 새크라멘토 킹스전 상대방과 충돌로 왼쪽 무릎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라는 결과로 아쉬운 시즌을 보내며 신인상은 데미안 릴라드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렇지만 2년 차인 2013-14 시즌부터 부상 악령을 떨쳐낸 듯 공격과 수비를 보여주며 PER(player Efficiebcy Rating) 26.5를 기록하며 역대 만 21세 이하 선수 최고치를 기록하며 자신을 증명해 냈고 많은 농구 관계자들은 동 나이대 그와 비교할 만한 선수는 샤킬 오닐, 르브론 제임스 뿐이라며 그를 치켜세웠습니다. 3년 차 시즌에는 시즌 PER 1위를 기록 효율 끝판왕의 모습을 보여주며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으며 플레이오프 평균 31.5 득점, 11 리바운드, 3 블락을 기록하며 데뷔 첫 플레이오프 무대답지 않은 무시무시한 활약을 펼쳤으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게 스윕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활약에 뉴올리언스는 5년 145M이라는 엄청난 계약을 안겨주며 그를 NBA 내 No.1 빅맨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이후 지속적인 활약을 보였으나 반복되는 부상과 떨어지는 팀 성적으로 결국 2018-19 시즌 공개적으로 트레이드를 요청하였고 다양한 팀들이 트레이드 대상으로 떠오르던 와중 반대급부로 론조 볼, 브랜드 잉그램, 조시 하트, 1라운드 픽 3장, 픽 스왑 2장을 제시한 LA레이커스로 트레이드되며 데이비스의 뉴올리언스 생활은 막을 내렸습니다. 시작은 아름다웠으나 끝은 씁쓸함을 안긴 뉴올리언스와 데이비스의 이별은 팬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안기고 리그의 스몰마켓 팀 팬들에게 같은 입장이 될 수 있다는 씁쓸함을 안겨준 사건이었습니다. 

    3. 레이커스의 우승

    앤써니 데이비스의 트레이드 요청은 NBA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리그의 판도를 바꿀 중추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데이비스는 컨덴터 팀에서 뛰기를 바라였고 승리를 추구하는 열망을 표현했으며 이는 르브론 제임스와 함께 골드&퍼플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은 그를 볼 수 있는 블록버스터 트레이드로 이어졌습니다. 두 세대에 걸친 재능의 결합이 레이커스의 부활에 기름을 끼얹었고, 2019-20 시즌 레이커스는 다시 한번 챔피언십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올랜도에서 버블로 시즌이 진행된 특수성이 있었지만 정규시즌 NBA 1st 팀에 선정되었고 플레이오프에서도 1라운드부터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28.8 득점, 9.3 리바운드, 3.6 어시스트, 1.2 스틸, 1.2 블락을 기록하여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한 선수 중 가장 큰 볼륨을 자랑하였습니다. 파이널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며 Final MVP를 수상한 르브론 제임스와 함께 레이커스를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더 높은 곳으로의 도약을 꿈꾸었던 데이비스의 결정은 레이커스 성공의 필수 요소가 됨에 따라 우승으로 증명되었으며, 타이틀을 차지하고 그가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며 NBA 역사에 그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계속되는 이야기

    앤써니 데이비스의 대학 시절부터 NBA 챔피언십을 차지하기까지의 여정은 재능, 투지, 변화등의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가 뉴올리언스에 안긴 희망과 기대부터 충격과 좌절까지, 다양한 감정들을 안기며 농구선수를 넘어선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비록 이별이 아름답지 못하고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기며 슈퍼스타들이 팀을 흔드는 모습을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으나, 그곳에서 보여줬던 활약과 기록 투쟁마저 없어진 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리를 계속해서 갈구하기에 그들은 프로 선수이고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승리에 대한 집착이라고도 생각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앤써니 데이비스의 이야기가 지금 흔들리는 레이커스에 어떤 결과를 더 가져다줄지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날아올라라 "갈매기" 앤써니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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